2023년 9월, 한 기업의 복지 휴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정규직은 사가독서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기간제 근로자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다. 회사 측은 "올해 개정된 휴가법에 없는 휴가는 기간제는 사용 불가"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차별 금지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발상이었다. 과연 회사의 설명은 타당할까?
법 조항 vs 현실: 제8조가 말하지 않는 것들
근로기준법 제8조는 명확하다.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동종·유사 업무 종사자와 차별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특별휴가'라는 이름의 복지 제도가 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지 여부다. 독서휴가처럼 법정휴가 외 추가로 부여되는 혜택은 회사 자율에 맡겨진다. 하지만 정규직에게만 허용하는 순간, 이는 구성원 간 형평성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된다.
노동법 전문가는 *"복리후생 차별 역시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2022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식대·교통비 지원 제외가 차별"이라며 기업에 배상금을 물린 바 있다. 독서휴가 역시 *근로 조건의 일환**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9월 개정법의 함정: 회사의 편의적 해석
회사가 내세운 '2023년 9월 개정 휴가법'은 실제로 근로기준법 시행령 일부 조항 변경을 가리킨다. 해당 개정은 연차휴가 사용 시기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지, 특별휴가 관련 규정을 없앤 것은 아니다. 회사 측이 법의 공백을 악용해 기간제 근로자의 권리를 축소한 셈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계약 시점 논란이다. 질문자는 6월에 채용됐는데, 회사는 9월 개정법을 근거로 들었다. 법 원칙상 계약 당시 규정이 적용되어야 함에도, 사측은 소급 적용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노동계약법 제4조(신의성실 원칙)를 명백히 위반한다.
숨겨진 비교 대상: 누가 '동종 업무'인가
차별 여부를 가리려면 비교 집단이 명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규직 영업팀과 기간제 영업팀이 동일한 KPI로 평가받는다면, 이들은 법적 정의상 '동종 업무'다. 반면 정규직이 전략 기획을, 기간제가 고객 응대만 담당한다면 차이가 인정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기업이 업무 범위를 모호하게 설정한다는 점이다. 기간제 근로자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성과를 요구하면서도, 혜택은 차등 부여하는 이중 잣대를 사용한다. 2023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중견 기업의 67%가 "기간제도 정규직과 유사 업무 수행"이라고 답했으나, 92%는 "복지 차등 존재"를 인정했다.
소송의 현실: 이길 수 있어도 싸우기 어려운
이론상 승소 가능성이 높아도, 기간제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1년 단위 계약자가 다수인 현실에서, 소송 기간 동안 재계약 거부를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2022년 기준, 차별 시정 신청 건수 중 10% 미만만이 최종 조치로 이어졌다.
한 기간제 교사는 *"독서휴가 신청했다가 '비협조적'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노동권 운동가는 *"법적 권리가 있더라도 현장에선 암묵적 압력이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해법은 있는가: 노동조합의 부재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교섭 권한의 불균형에 있다. 정규직이 주축인 노동조합은 기간제의 복지 확대를 자기 권한 축소로 인식해 소극적이다. 2023년 한 항공사 노조는 "기간제 정규직 전환 시 기존 직원 대우 하락"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이를 타파하려면 법적 강제력이 필요하다. 독일은 2004년 '파트타임·기간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모든 복리후생을 근로시간 비율대로 적용하도록 의무화했다. 1일 6시간 근무자에게는 정규직의 75% 복지를 보장하는 식이다.
차별의 벽, 넘을 수 있을까?
독서휴가 논란은 보이지 않는 계급제가 한국 노동시장에 뿌리내렸음을 보여준다. 회식 자리에서도, 교육 기회에서도, 휴가 사용에서도 반복되는 '차별의 관행'을 깨려면 법 조항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의지, 사용자의 양심, 사회적 공감이 삼각동맹을 이뤄야 한다.
2024년, 한 기간제 사원의 일기장에 이런 문구가 적혔다. "책 한 권 읽을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내가, 과연 이 사회의 구성원인가?" 이 물음에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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